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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와 비평][GB24] (26) 김자이 Jayi Kim

방경지

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는 미술계 관계자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미술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이 방대한 규모의 전시를 온전히 즐기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본 연재는 《2024 15회 광주비엔날레》(2024.9.7-12.1)와 관객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것이 기획의 의도이다. 따라서 본 지면에서는 ‘광주비엔날레’가 아닌 참여작가들의 ‘개별 작업’을 다루게 될 것이다. 이 글이 관객들로 하여금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보다 가까워지는 경험을 선사하기를 기대한다. 

《2024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작품론
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 2024 9.7 – 12.1



김자이: 안온함 숨 고르기에 대한 염원


방경지

패이고 갈라진 검은 바닥 위를 쉴 새 없이 지나다니는 자동차, 보도블록 사이에 규칙적으로 심긴 가로수를 보며 우리의 숨은 얼마나 고를 수 있을까? 밀도 높은 시간을 보낸 후 몰아쉬는 숨은 쉼 없는 사회에 내몰려진 혹은 발 디딘 우리가 내는 괴로운 신음으로 남는다. 그러나 몸과 마음의 신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다시 헐떡이는 숨을 참으면 숨 쉬는 방법을 잊어버린 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김자이(1982- , 한국)는 현대 사회에 급격한 변화 속에서 숨을 잠시 고르는 휴식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있다. 작가는 개인적 투병 생활에 대한 경험을 계기로 ‘휴식’ 자체를 탐색하는 것을 시작으로 휴식의 방식을 탐구하면서 이에 따른 다양한 휴식 방식을 바탕으로 시리즈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1) 

작가는 휴식이라는 단어의 리서치부터 시작해서 휴식에 관해 연구하고 다양한 휴식 방법을 시도하며 자신에게 맞는 휴식을 찾아가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휴식의 기술 1〉(2017-2020)은 작가가 리서치를 통해 휴식이 수면, 명상 등과 같이 뇌가 휴식할 수 있는 정적인 휴식과 운동, 뜨개질, 산책 등 몸을 움직여서 에너지를 얻는 동적인 휴식으로 구분될 수 있다는 것을 학습한 후 이와 같은 휴식의 방법을 하나씩 시도해 보며 나오는 과정과 결과물을 시각적으로 기록한 작업이다. 2018년 광주 산수미술관에서 선보인 개인전 《휴식의 기술 1》에서 작가 자신이 동적인 휴식인 뜨개질을 통해서 만든 나무줄기를 천장에 매달아 공간을 구성하고, 산책하면서 촬영한 영상으로 벽면을 채움으로써 관람객들이 휴식을 할 수 있는 인공적인 자연공간을 조성하기도 했으며, 2022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된 기획전 《두번째 봄》에 출품한 〈파도타기: 휴식의 기술〉(2022)과 같이 싱잉볼을 이용하여 명상할 수 있는 공간을 연출하기도 했다.

나아가 작가는 휴식 방식이 외부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관객과 상호작용을 하는 소통 방식을 보여주었다. 다른 사람들의 휴식 방식을 리서치를 통해 연구하는 작업인 〈휴식의 기술 3〉(2019-2020)이 바로 그것이다. 관람객은 작가가 전시장에 제공한 설문지나 큐알 코드를 통해서 본인의 휴식 방식을 공유하고 작가의 휴식 방법의 하나인 식물을 키울 수 있는 씨앗 키트를 제공받는다. 이는 ‘휴식 교환 프로젝트’로 씨앗 키트를 가져간 관람객은 씨앗의 싹을 틔우기 위해 물을 주고 빛을 쬐어줄 해를 찾고 흙을 만지는 휴식을 경험한 후 그 과정을 기록한 사진을 작가에게 제공하며 작가의 작업에 의미를 덧대었다.

이처럼 휴식 방법으로 작물을 재배하는 과정은 작가에게 여러 문제의식을 발견하게 하는데, 이후 전개되는 작업은 그 내용들을 보여주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작물 재배 과정이 휴식을 제공하고, 몸을 쓰며 에너지를 생산하고, 환경에도 도움이 되지만, 식물 재배를 위해 모종과 도구들을 사고 여러 가지 필요 용품을 사는 구매 행위가 오히려 자연을 파괴하는 원인이 되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제공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가이아의 도시》(국립아시아문화전당, 2023-2024)에서 선보인 〈휴식의 기술 ver. 도시농부〉(2023)로 확장된다. 작가의 경작 경험에서 시작한 해당 작업은 인공 텃밭의 형태로 전시장에 구현되고 전시 기간 워크숍을 통해 도시 경작이 진행됐다. 관람객은 전시장에서 작물의 성장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동시에 식물을 키우기 위해 많은 물품과 자원이 소비되는 상황도 함께 경험하게 된다. 자연을 갈구하며 이를 통해 치유 받는 동시에 경작 활동을 위해 플라스틱, 고무 등으로 이루어진 도구를 갖추며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에서 벗어나지 않은 인간의 모습을 상기시키며, 자연과 공존하는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사유하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녀의 작업은 생태계의 상호 관련성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자연과 문명의 공진화를 시도하는 미술이기에 생태미술로 다뤄지고 있다.2)

이번 《15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인 〈휴식의 기술 ver. 도시농부 re-member〉(2024)에서 작가는 먹거리의 출처, 탄소 배출에 대해 더욱 주목했다. 바람과 볕이 많이 들어오는 양림문화샘터 2층에 인공 텃밭을 구현하여 3개월의 전시 기간 동안 도시 경작을 진행했다.(도판1) 그리고 지역 주민들은 준비된 도구로 로즈마리, 바질, 민트 등을 함께 재배하고, 이를 로컬 상점에 직접 도보로 배달하며 탄소 배출에 대한 문제의식을 상기한다. 작가는 이러한 활동을 통해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우리가 먹는 음식과 휴식 그리고 자연과 공존하는 삶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 것이다. 김자이의 이러한 작업은 생태미술가이자 과학자인 내털리 제러미젠코(Natalie Jeremijenko, 1966-)의 작업과 상통한다. 제러미젠코의 작업 대부분은 작가 자신의 문제의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접근성 향상을 끌어내기 위해 자신의 실험실과 미술관 밖인 도시환경에서 펼쳐진다. 또한, 제러미젠코가 진행하는 ‘공적 실험(public experiment)’은 사회적 문제를 도출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며 그 가설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과의 협업을 유도한다. 사회 활동가의 역할을 연상시키는 제러미젠코의 프로젝트는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지역 공동체 중심의 관계망 확장에 주력해 오고 있다.3) 김자이 작가 또한 휴식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한 작가의 개인적인 연구가 확장되어 휴식 교환 프로젝트를 통해 관람객과 적극적으로 상호작용을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발견한 환경 문제, 탄소 배출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작업에 뿌리를 내려 로컬 상점, 지역 주민들의 협업으로 이뤄지는 프로젝트의 형태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번 작업을 위해 필연적으로 주민, 상점 주인들과 관계망과 유대가 형성됐다. 

개인은 공동체에 속하고 개인의 문제의식이 공동체에 공유될 때, 이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또한, 그 문제를 공유하고 새로운 삶의 형태를 제안하고자 하는 작가는 생태계의 일원으로 책임감과 소속감을 공유할 수 있는 계기를 협동 프로젝트를 통해 마련한 것이다. 생태미술 연구자인 박윤조는 생태미술의 전개 과정을 되짚어 본 연구에서 “도심 속에 농장을 운영하거나 친환경 공원을 구축하고, 자연환경 자체를 전시장으로 조성하는 이러한 사례들은 자연환경과 지역문화, 나아가 그 구성원의 정신적 토대까지 아우르는 이상적인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제시”하며 “환경에 대한 윤리적 책임감을 기반으로 공동체의 변화를 견인하고자 하는 점에서 새로운 장르의 공공미술로 평가할 수 있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4) 이러한 점에서 김자이의 작업은 〈휴식의 기술 ver. 도시농부 re-member〉는 새로운 장르의 공공미술로 평가될 수 있는 측면을 갖는다.

광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김자이는 최근 한국에서 시작한 휴식 교환 프로젝트를 개개인뿐만 아니라 국적, 문화권, 거주지의 유형에 따라 휴식 방법이 다르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갖고 여러 나라의 레지던시를 다니며 리서치로 함께 진행 중이다.5) 그녀의 휴식의 기술은 다양한 국가의 사람과 문화를 경험하면서 휴식의 방식과 이에 대한 시도들은 더욱이 다양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작업을 통해 작가 자신뿐 아니라 자신이 딛고 있는 땅과 함께하는 누군가의 숨 고르기가 평안할 것을 기원하는 마음은 같으며 이는 끝없는 혼돈으로부터 모두에게 안부를 묻는 그녀만의 연대를 이루는 방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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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경지 (b.1993)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미학과 정치 사이의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미술축제, 문화재단, 미술도서관 등 다양한 형태의 기관에서 학예보조 인력으로 근무했으며, 현재는 뮤지엄한미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크고 작은 프로젝트와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주요 관심 분야는 로컬리티, 커뮤니티, 사진이며, 이를 전시, 비평 등 다양한 형태로 연계시키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1) 김자이는 조선대학교 판화미디어과를 전공한 후 런던 킹스턴대학교 아트&스페이스에서 석사를 졸업, 조선대학교 미술학부에서 박사를 수료했다. 《생태미술프로젝트》(광주시립미술관, 2023), 《휴식의 기술 3》(중외공원 프로젝트 스페이스, 2020) 외 다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광주시립미술관 국제 레지던시 작가로 활동하는 등 활발하게 작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작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작가의 웹사이트 https://jayikim.com,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artist_jayikim을 참고하기 바란다.

2) 박윤조, 「생태미술(Ecoart): 전시장에 생태체계를 구현한 사례들을 중심으로」, 『현대미술사연구』 45(2019), 122-123 참조.

3) 박윤조, 『내털리 제러미젠코』(커뮤니케이션북스, 2024), 11 참조.

4) 박윤조, 「1970년대 이후의 미술에 나타난 생태학적 세계관의 구현: 생태미술(Eco-Art)의 전개 과정을 중심으로」(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19), 183.

5) 광주비엔날레 GB작가스튜디오탐방 김자이. https://youtu.be/kNNSTyU6G-Q?si=raRExbbp-Exk-nIL (최근 접속: 2024년 12월 17일).




김자이, 〈휴식의 기술 ver. 도시농부 re-member〉, 2024, 가변설치, 혼합매체,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션 (사진 제공: 최은총)



'미술사와 비평'은 미술사와 비평을 매개하는 여성 연구자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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