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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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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時 – 동·시

  • 전시분류

    단체

  • 전시기간

    2025-12-12 ~ 2025-12-24

  • 참여작가

    박진화, 길종갑, 조정태, 노경호, 김덕진, 설종보, 진창윤

  • 전시 장소

    문화공간 역

  • 유/무료

    무료

  • 문의처

    01084577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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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을 위하여-동녘 동에 부쳐

 

박응주(미술비평가)

 

지난 한때 젊었던 날들은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거대 권력에 맞서 예술이 무기가 되어도 좋으리란 이념의 언어들에, 아니 정념의 돌개바람에 휘말려 분투했던 사랑의 날들이었다. 산업화라는 급속 욕망의 희생물, 노동자들의 산업재해에 함께 아파했던 긍휼과 연민, 불의한 탐욕의 집단이 백성을 가축처럼 여기는 환멸의 정치세력에 대한 분노, 빼앗긴 들에서 쓸쓸한 서로의 마음을 위무하는 노래와 꿈, 그 많던 연대와 사랑들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얻은 빛나는 성과물 자유를 잘 양육하지 못했다. 예컨대 소비자본주의가 기민하게 나꿔채 탈취해가는 도적질을 속절없이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로부터 30, 40여년이 경과한 지금, 불의한 시대와의 불화라는 진지한 사회의식은 어느덧 대중 속에 뒤섞일 수 있는 용의, 그들로부터 갈채를 받는 일이 최고선이 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이는 그들에게 전혀 재주가 없는 분야였다. 사랑, 진정성, 공동체적 가치, 윤리적 삶과 같은 가치가 더 이상 미학의 범주로 취급되지 않는 그 자리를 정확히 대체한 것은 워라벨의 개성, 디지털 유랑 주체들의 유목적 자유, 몸에 대한 강박 혹은 나르시시즘, 환금성 예술 가치의 승인, 반려동물에 대한 아가페적 사랑, 해외여행의 낯선 충동과 같은 신선도 높은 매력들이 차지하게 된 것이다. 군중이 대중으로 분말화되어 가는 배경막 속에서 말이다.

이 광경을 스케치해보려 한다. 진실을 말하고, 소명의식으로 행동하고, 노동의 신성함을, 공동체의 유대감을 그림 안에서 역설한들 미안하지만 기분 좋은 긍정성보다 더 매력적이지는 않은, 성공과 사적 소유에는 도움되지 않을 덕목들일 뿐인 것이다. 그건 군중이 군중이었을 경우에나 가능한 것들이었다. 분말화된 대중 속에서는 무한한 영역에서의 무한한 소비가 행해질 뿐이다. 시간, 자유, , 사랑, 여행, 예술, 소비로 먹어 치울 수 없는 항목은 세상천지 그 무엇도 없다. ‘오징어 게임의 질주다.

그렇게 그들의 그림은 이 세상 안에 착근할 점성을 잃어버렸고 떠돌며 부유했다. 마치 고산지대를 통과할 때 귓가를 울리는 음소거된 ~’한 침묵의 시간이다. 그들은 잃어버린 청춘을 보상받을 길이 없어졌다. 앞으로도 자유그것은 이제 다시는 그대들의 것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깨끗이 포기하는 게 나을 것이다!

이 무중력같은 시대의 공기는 대체 뭐라 말할 수 있을까. 답을 구하던 중 어느 자연과학도로부터 들은 바 설명이 하나 귀에 들어왔다. 인공위성(소위 정지궤도 위성)은 지구로부터 36천 킬로미터 상공에서 왜 추락하지 않으면서 지구 자전과 동일한 속도로(초속 3킬로미터) 돌 수 있는가? 그것은 우주공간을 직진하려는 원심력과 그를 붙잡아두려는 중력의 길항작용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 내가 제출하는 별 유쾌하지 않을 예감의 그림이 이것이다. 현실주의자-이들은, 그리고 그들의 예술은 언제까지일지는 모르는 당분간 이 지상으로 귀환하지 못한 채, 이 지상의 궤도와는 36천 킬로의 거리 밖에서 겉돌며 비행하고 있으리라는 예감을 말함이다.

어느 날 홀연히 우주선에 탑재돼 튕겨져 나간 위성체, 그것은 언젠가 중력이 더 강력한 힘으로 끌어당겨 줘 이 지상에 귀환해 안착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은 채 그들은 계속해 헛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80년대라는 열망의 불꽃이 지고 난 소슬한 뒤안길을 배회하고만 있는 우주공간의 주소불명자들로 남을 것인가. 개별의 처지와 사정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훨씬 더 넓은 격랑의 시대라는 풍경 안에서의 그들을 스케치해보고자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여 이 전시는 원심력에 저항하고자 하는, 중력들을 창조하고자 하는 간단없는 분투에 관한 보고회다. 말하자면 왜 나는 민중(민족)미술을 해오게 됐으며, 무엇이 나를 이리로 이끌었는지, 민중해방이라는 거대한 정념이 나의 젊은 날을 투과했는데, 이를 통해 나는 자기해방을 이루었는지, 그렇다면 나의 미술이란 그 자기해방으로 가는 길에 무엇이었는지를 스스로 묻고 답하는 고독한 비망록들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어떤 이는 보다 낮아진, 보다 느려진, 보다 무미해진, 비워진 삶을 환기함으로써, 이 현재를 소외시켜 어떤 행복의 꿈, 살아있는 생생한 삶을 아프게 환기하려 한다. 혹자는 회상 속의 선인들의 욕망과 눈물과 침묵을 캔버스에 인각(印刻)하려 한다. 그렇기에 여타의 비본질적인 잡다한 장식이나 설정을 위한 소품이나 장치들은 하등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삶이 누더기이고 부조리이며 분열인데 그림이 그림같은 것이었을 때 화가의 자기환멸을 견딜 수 없다는 정직한 태도에서 나왔을 것이다. 또 세상과 내 몸 사이의 길항과 교호상태를 의심치 않는 일원론자 혹자는 그림을 홍운탁월(烘雲托月)의 매개체로 본다. 여백을 통해 사물을 드러내듯 할 뿐만 아니라, 그림을 통해 삶을 환기하려는 것이다. 탁한 그림을 통해 맑은 세상을 희원하는 마음이다.

여기서 필자는 참여작가 모두의 개별 작품의 성상에 대해 각론하지는 않았다. 생애 나이 60, 화업 40여 년의 관록과 사유의 힘을 믿고 전시의 화두로 던져진 동녘 동()’ 자 하나를 비로소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출발에 의미를 둔다는 취지에 동의한 바 있기 때문이다. 미술이 이 세계와의 광케이블이 설치되지 않은 그 어떤 꿈이나 환상의 구성물이라면 거절하겠다는 모더니즘선언이 여전히 유효하다. 리얼리즘이든 환영주의이든 그것은 태도와 기질에 따른 방법론의 여지일 뿐일 것일 테다. 요체는 삶, 세계를 체감하느냐 환기하느냐 나아가 바란다면 삶 혹은 세계를 바꿀 힘까지도 주느냐이다. 더 치열하고 더 엄격하고 더 절박한 비망록들만이 구원의 끈이다. 원심력을 이긴다. 중력이여 거세게 휘몰아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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