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뜰리에 에르메스
김아영 개인전
"플롯, 블롭, 플롭 (Plot, Blop, Plop)"
2025년 3월 21일 - 6월 1일
아뜰리에 에르메스는 2025년 3월 21일부터 6월 1일까지 시각예술가이자 미디어 아티스트인 김아영의 신작 개인전 “플롯, 블롭, 플롭 (Plot, Blop, Plop)”을 개최한다. 현실의 사건을 질료로 삼지만 이를 뛰어 넘어 가상의 시공간을 창안하는데 진력해온 작가는 낯선 내러티브 구조와 수사학 등의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사변적 픽션 (Speculative Fiction)’이란 비평적 영역을 개척해 왔다. 고고학과 미래주의, SF적 상상력이 동원된 혼성적인 이야기로 이주, 자본주의, 신식민주의와 같은 거대담론을 재고해온 것이다. 특히 최근 수년간 성공적으로 전개한 작업들은 ‘히스토퓨처리즘 (histofuturism)’이라 할 만큼 더욱 확장된 시공간의 세계를 다룬다.
신작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원심력이 작동하듯 가속화된 시공간의 확장 행보로부터 잠시 멈춰 서서 20세기 역사 속의 한 지점으로, 작가 작업세계의 오랜 구심점이라 할 모티브에 임시 정박을 시도한다. 다분히 언어 유희가 작동된 ‘플롯, 블롭, 플롭 (구획, 방울, 퐁당)’이란 타이틀은 동시다발적이며 침략적인 동시대의 지정학적 위기에 대한 작가의 성찰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끝나지 않는 분쟁 지역과 석유자원이라는 이슈 속으로 다시 뛰어든다는 의지를 천명한다. 김아영은 2014-2015년에 3편에 걸쳐 “제페트, 그 공중정원의 고래기름을 드립니다, 쉘 (Zepheth, Whale Oil from the Hanging Garden to You, Shell)” 연작을 진행하며 석유라는 마술적 액체 자본에 대해 사유한 바 있는데, 소닉 픽션과 음악극 형식으로만 제시했던 프로젝트를 이번 작업을 통해 시각적으로 완성하고자 한다.
작품은 사우디 아라비아 리야드의 알 마터(Al-Mather)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거시사와 미시사가 교차하는 근현대사를 조망한다. 석유자본의 형성과 이동, 한국 기업들의 중동 특수, 석유 파동과 걸프전, 난민 피난처와 부촌으로의 변모 등, 석유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의 정보적 편린들이 작가 부친의 경험과 기억, 오랜 기간에 걸친 작가의 리서치와 현장방문, 그리고 조우한 인물들의 인터뷰와 얽혀 주거 단지에 대한 다층적인 서사를 구성한다.
중동에 대한 첫 리서치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날에야 비로소 생성형 AI와 게임엔진 CGI, 라이다 스캐닝 등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운용해서 작가는 사료의 빈 틈을 채워 우리가 직접 가본 적 없는 시공간을 영상으로 구현한다. 또한 본인이 직접 쓴 석유의 기원에 관한 서사를 ‘기계장치의 신 (Deus ex Machina)’이라 명명한 알고리듬 프로그램이 분절하여 생성한 내러티브를 코러스로 구현한 사운드, 알-마터 아파트 단지의 평면도와 걸프전의 작전 지도 설치,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조명 설치가 어우러져 공감각적인 전시를 구성한다. 전시는 단일 자본에 의존하는 산유국의 지대 자본주의의 한계와 근대화의 동질화와 다양성의 소멸, 석유에 얽힌 탐욕과 분쟁의 역사를 반추하는 계기를 마련한다.